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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저편의흔적들/조행기

갯바위에서 광어 낚시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두려워하고 가난한 자들은 부자를 무서워하지요.

그렇지만 내가 아는 낚시꾼들은 말이죠, 내가 백인이든 아랍인이든 신경 쓰지 않아요.

비싼 옷을 입었든 싸구려 장화를 신었든 오로지 물고기에만 몰두하죠.

강과 이 낚시에만 말입니다.

낚시꾼들에게 유일한 미덕이란, 인내와 관용, 겸손뿐이지요.

그래서 좋아요.

 

물고기 한 마리를  잡으려고 보통 몇 시간이나 기다리나요?

열두 시간?

어떤 때는 백 시간도 더 기다리지요.

사실과 수치를 믿는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쓰인 시간인가요?

당신은 바람과 빗줄기와 추위 속에 계속해서 기다리죠.

형편없는 성공률에도 불구하고요.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당신도 믿음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결국 당신의 믿음과 노력은 물고기로 보상을 받지요.

 

믿음과 낚시를 위해.. 그리고 과학을 위해.. 건배..!

 

영화 '사막에서 연어낚시' 대사 중에서-

 

 

 

 

십 수년만에 자월도로 갯바위 광어 낚시를 다녀왔습니다.

11월이 다 가기 전에 다녀와야겠다는 조바심으로 다녀온 것이지요. 

.

.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8시 30분 배를 타고 한 시간 걸려 자월도항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4시 5분에 나가는 배와 그 시각에 맞춰 마을버스를 타고 철수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가까운 포인트로  진입했습니다.

바닷물이 덜 들어오는 무시 물때지만, 10시 만조 시각에 곶부리 포인트에 진입을 하려니 다소 험한 갯바위를 타야 했지요.

포인트 철수 시간까지 낚시하는 시간은 서너 시간뿐이었습니다.

 

11월 중순 무시 물때의 만조 물에, 그것도 처음  들어가는 포인트에서  광어를 잡겠다는 것이  스스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낚시 경험에서 나오는 조과의 확률 셈법에도 도저히 맞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나 매번 갯바위 낚시 때마다 갖게 되는 대책 없는 믿음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대한 믿음 말입니다.

 

 

 

 

조과가 없어 보이는 형편없는 확률의 낚시이지만 열심히 캐스팅했습니다. 

1/8 지그헤드에 3인치 빨간색 그럽웜부터 시작해서 1/2온스에 6인치 빨간색 웜까지 몇 번씩이나 교체해가며 던졌습니다.

결국은 5자나 됨직한 광어란 놈이 탐욕스럽게 6인치나 되는 시뻘건 웜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8 피드 미듐 라이트대에 10LB 합사줄이 터질 듯 끌려오는 녀석을 마침내는  들어 올리고야 말았지요. 

 

 

 

형편없는 성공률의 낚시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바다는 믿음을 갖고 노력한 대가로 훌륭한 보상을 해주었습니다.

4짜까지 한 마리 더 걸어 올리고서야 마음에 여유가 생겼지요.

그때서야 서녘을 향한 오후 햇살에 파도가 넘실대는 늦가을 바다의 정취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서 쉬워 보이는, 그러나 역시 험한 퇴로도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모처럼 겨우 마음먹고 들어오게 되어서 서너 시간 즐겼지만, 기꺼이 퇴장하는 때도 생각해야 했지요.

우리네 인생살이가 다 그런 거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서너시간 즐기던 곶부리 포인트에서 미련 없이 철수를 했습니다.

 

 

 

뭍으로 나가는 배를 기다리며, 저만치 있는 배 한 척과 할미염이라 부르는 작은 섬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겼습니다.

태고적부터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할미염 때문에 저 배가 외로워 보이지 않는구나..

저 할미염은 한나절 스치듯 다녀가는 이 늙어가는 낚시꾼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

기껏 촌음과 같은 인생살이의 퇴장에 대해서 이제서야 게으르게 생각해보는 나에 대해서 말이다.

 

 

 

동지가 되려면 한 달이 넘게 남았는데도 벌써 날이 짧아 해가 일찍 저물어 갔습니다.

뭍으로 향해 가는 배의 갑판 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영흥도의 아름다운 황혼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곳의 갯바위를 얼마나 드나들었던가 하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지요.

아니.. 나의 삶의 여정도 저렇게 기울어 가나보다 하면서  회한에 잠겼는지도 모릅니다.

.

.

아름다운 황혼?......

.

.

믿음과 황혼의 낚시를 위해... 건배!

갯바위에서 광어낚시...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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