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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듣는다/세상을 듣는다

Only Our Rivers Run Free - James Last & his Orchestra연주 외

 

 

 

 

 

 

 

 

Only Our Rivers Run Free - Mickey MacConnell

 

only our rivers run free - christy moore

 

 

When apples still grow in November,
When Blossoms still bloom from each tree,
When leaves are still green in December,
It's then that our land will be free,
I wander her hills and her valleys,
And still through my sorrow I see,
A land that has never known freedom,
And only her rivers run free

사과가 익어갈 11월일지,
수목마다 꽃들이 만발할 때일지,
나뭇잎이 무성한 12월일지,
그 어느 때고 우리 땅은 독립이 되겠지.
언덕을 오르고 계곡을 헤매는 이 가슴엔,
슬픔만이 차 오르고,
자유가 없는 이땅에도
우리의 강만은 유유히 흐르네

I drink to the death of her manhood,
Those men who'd rather have died,
Than to live in the cold chains of bondage,
To bring back their rights were denied,
Oh where are you now when we need you,
What burns where the flame used to be,
Are ye gone like the snows of last winter,
And will only our rivers run free?

이 땅의 젊은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시는 한잔,
그들은 속박의 차거운 사슬에서 살기보다
차라리 죽기를 원한 것이었지.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
그대들이 나서야할 이때에
다들 어디에 있느뇨?
정열의 불길이 솟던 곳에 이젠 무엇이 타는가.
지난 겨울의 눈 처럼 다 녹아 없어졌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의 강만 유유히 흐르라고? 

How sweet is life but we're crying,
How mellow the wine but it's dry,
How fragrant the rose but it's dying,
How gentle the breeze but it sighs,
What good is in youth when it's aging,
What joy is in eyes that can't see,
When there's sorrow in sunshine and flowers,
And still only our rivers run free 

그렇게 즐거워야할 우리네 삶도  서글픔뿐이고,
달콤한 포도주 맛도 쓰기만 할 뿐,
향기로운 저 장미도 시들어가고,
살랑대는 미풍도 한숨일 뿐이네.
사그라지매  젊음이 무에 좋으며,
볼 수 없으매 눈으로 즐길 것이 무엇이리.
햇살에도 꽃잎에도 서린 것은 슬픔인데,
그래도 우리의 저 강만은 유유히 흐르네.

 

이 곡은 1965년 북아일랜드 출신의 가수이자 작곡가인 Mickey MacConnell이 내놓은 작품으로 Christy Moore가 노래하면서 부터 더욱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내용은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관한 애국심의 고취라 할 수 있는데 즉시 아일랜드 전역에서히트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는 더욱 작곡에 열정을 쏟게 되었다.
음악 가정의 막내로 어릴적부터 노래를 지었다는 그는 더블린의 출판사와 The Irish Times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그의 노래들은 국제적으로 취입되었는데 [Christy Moore, Mary Black, The Worfe Tones등의 아티스트들에 의해 불리워 졌다고 한다.

 

Only Our Rivers Run Free - James Last & his Orchestra


1929년 독일에서 태어난 제임스 라스트는 어린 시절 음악교사로부터 음악적 소질이 전혀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굴하지 않고 브레멘 음악학교에 입학, 더블 베이스를 전공하였다.

그후 라디오 브레멘댄스 오케스트라에 가입하는 등 자신의 음악에 대한 끝없는 의지를 불태워갔다.

1948년 제임스 라스트는 그의 형 들과 함께 '라스트 베거 앙상블'을 조직하여, 그의 음악적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독일
 재즈 베이스계의 제1인자로 칭호를 받으며 그의 성공을 예감하였다.

1964년 폴리 돌과 전속계약을 맺은후 1970년대부터는 클래식과 각국의 민속 음악을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세계로 작품의 색을 변화시켰다.

그는 17장의 플래티넘, 206장의 골드 디스크를 기록하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