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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저편의흔적들/살며생각하며

살며 생각하며 - 가슴으로 치른 산고

흐르는 곡/The Futureis Beautiful.





가슴으로치른 산고

 

마흔 셋의 늦은 나이에 나는 노처녀 딱지를 떼고 결혼을 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요,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것입니다.

43년간 지켜온 독신주의를 허물고 결혼이란 걸 하게 된 이유는 모정에 굶주린 삼남매의 쓸쓸한 눈빛,

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보다는 세 아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신혼여행까지 미뤄가며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나누고자 했지만,

아이들은 나를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삼남매와 좀 가까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접고 나를 엄마로 받아들일까,

나는 자나 깨나 고심 또 고심했습니다.

나는 삼남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서 아이 낳는 일도 포기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집도 옮기고

끼니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식탁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큰아이는 애써 공들인 음식을 맛이 없다고 했고, 덩달아 다른 두 아이도 맛없다며 밥투정을 했습니다.   

"아유 맛없어, 뭐가 이렇게 짜냐."

가끔은 귀가시간에 맞춰 대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려고 손길을 건넸지만, 

아이들은 내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냉랭한 모습에 때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갑작스런 복통으로 들어누웠습니다.

그저 가벼운 체증이려니 생각하고 약을 먹였지만 아이의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심해졌습니다.

나는 막내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허겁지겁 달려갔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아이를 침대에 눕히자마자, 나는  그만 탈진해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때 뒤따라온 둘째가 말없이 손수건을 건넸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감격해 손수건을 받아든 채 멍하니 아이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둘째 아이는 손수건으로 내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습니다.

바로 그때 희미하게 들린 소리...

"엄마, 엄마 !" 

엄마, 분명 엄마였습니다!

의식이 돌아온 막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그래, 엄마 여기 있어, 엄마야!"

꼬박 3년 만에 아이들이 나를 엄마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 후로 아이들의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삼남매의 입에서는 '엄마'라는 소리가 자연스레 나왔고

저녁에 한자리에 모이면 내 무릎을 서로 베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피웠습니다.

급기야 어버이날, 아이들은 나를 엉엉 울게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창 설거지를 하는데 내 등뒤로 아이들이 다가와 작은 편지 상자와 편지봉투를 건냈습니다.

나는 설거지를 하다말고 아이들이 건네준 편지를 읽었습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멋쟁이가 우리 엄마라는 사실이 왠지 낯설었어요.

항상 우리를 먼저 챙겨주시는 마음씀씀이에 눈물이 났어요.

안경 너머 눈빛이 차가워 보였지만 속마음은 봄볕보다 따뜻한 분이라는 걸 알게되었어요.

엄마,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 삼남매 올림

 

삼남의 합동편지였습니다.

순간, 뜨거운 눈물이 눈앞을 가렸습니다.

그렁그렁한 내 눈물을 보자 삼남매는 봄 맞은 개구리 떼처럼 품안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꼬박 3년,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나는 가슴으로 산고를 치르고, 귀한 자식 셋을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 TV동화 행복한 세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