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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듣는다/세상을 듣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Vitali Chaconne Grumiaux1956

 

 

 

Vitali Chaconne - Jascha Heifetz

 

Zino Francescatti - Vitali Chaconne in G minor

 

Arthur Grumiaux : Vitali, Chaconne

 

Tommaso Vitali, Chaconne in g minor.

Arthur Grumiaux, violin.

Riccardo Castagnone, piano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Tomaso Antonio Vitali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Tomaso Antonio Vitali의 샤콘느chaconne in G minor for violin and continuo는 슬픔의 정점에 있는 곡이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어두운 색채가 통주저음에 실린 느린 3/4박자의 이 곡에서 슬픔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 음악에는 부제가 없다. 

사실 이 곡이 비탈리의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드레스덴 원고 첫 페이지 상단 여백에 필사자가 적어놓은 'Parte del Tomaso Vitalino'라는 메모가 작곡자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다. 

더구나 이것은 토마소 비탈리가 작곡자라는 의미라고 할 수도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음악을 듣는 사람은 누구나 비탈리가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슬픔이란 그렇게 이름 붙이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르투르 그뤼미오 Arthur Grumiaux

 

슬픔을 바라보는 아르투르 그뤼미오Arthur Grumiaux의 연주는 이런 감정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떤 모습일 때 가장 바람직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마치 슬픔과 함께하지는 않겠다는 결의를 가진 슬픈 눈의 소년처럼, 그뤼미오는 어찌 보면 차가운 슬픔을 노래하는 것 같다.

 

 지노 프란체스카티 Zino Francescatti

 

지노 프란체스카티Zino Francescatti의 슬픔에 빠진 연주는, 비슷한 감정을 다시 경험해서 그것이 현실 속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단지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충분히 그 감정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야샤 하이페츠 Jascha Heifetz

 

슬픔의 원형을 연주한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의 연주는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회오리바람처럼 살아 움직이는 이 파괴적인 에너지 덩어리가 사실은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걸 느끼게 한다. 

한 발 떨어져 관조하는 듯한 하이페츠의 연주는, 마치 감정을 만들어 낸 신처럼, 자신의 창조물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예술가처럼, 슬픔은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여기-창조물 속에 담겨 있다고 설명하는 것처럼 담담해 보인다. 

슬픔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거기서 벗어난다는 게 그 감정을 외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담담히 자신의 감정을 바라볼 때 그것의 진정한 크기와 영향력, 그리고 그 감정 다음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깊이 이해할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어쩌면 감정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결국 나 자신에 대해 올바로 알 게 되는 게 아닐까? 

어떤 사람에게나 슬픔에 빠진 순간이 있고 때로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그 상태로 존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앞으로, 그다음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서면 슬픔은 등 뒤에서 점점 멀어지는 회오리바람처럼 내게 불어오지 않고 단지 존재할 뿐이니까.